제목 2006년 2월 -충북 음성 귀향전 전시회 기사
작성자 항산도예
작성일자 2017-11-01
조회수 227
흙내 불내나는 맑은 영혼의 도공을 만나다
전통의 멋과 향기를 전하는 '항상 임항택 명장'
  이화영(photo70) 기자  [2006-02-19 오후 2:00:27]
▲ 본 불 구이중 가마안을 살펴보고 있는 임항택 명장
ⓒ 이화영
'백발의 단발머리와 콧수염, 생활한복 차림에 상대의 마음마저 투영할 정도의 맑은 눈빛, 당당하면서 따스한 목소리' 도예를 통해 전통의 멋과 향기를 전하고 있는 항산 임항택(60) 명장의 첫인상이다.

임항택 명장은 도예를 향한 사랑과 열정으로 실력을 인정받아 대한민국 도자기공예 부문에서 2004년 11월 기능인 최고의 영예인 명장의 칭호를 부여받은 장인이다.

그는 고집스런 30년간 연구의 성과물로 특허(조선백자 진사 안료의 제조방법 및 그 안료)를 획득해 진사 채·발색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했다. 도자기에 대한 집념과 애정이 그를 대한민국 도자기 공예 명장의 자리에 우뚝 설 수 있게 했다.

▲ "31년 만의 귀향 전"을 축하해 주기 위해 전시장을 찾은 친구들과
ⓒ 이화영
수십 년이 넘는 세월동안 흙과 불에 혼을 담아 차가운 도자기에 생명의 온기를 불어 넣으며 우리 전통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명장 임항택. 그의 고향인 충북 음성에서 "31년 만의 귀향 전"이 열려 임 명장을 만나기 위해 전시회장을 찾았다.

요강 만들라고 공부시킨 줄 아느냐?

- 안정된 직업인 미술교사에서 도예가의 길을 택한 계기가 무엇인가.
"1973년 중학교 교사시절 한 신문에서 운보와 이당 선생이 조선백자 전시회를 개최한다는 기사를 보고 맥이 끊긴 줄만 알았던 조선백자가 경기도 이천 일원에서 전승되고 있음을 알게 됐다. 이때부터 나의 미래를 투자할 계획을 세웠고 조선백자에 대한 호기심이 내 발길을 이천으로 향하게 했다."

▲ 대학 졸업식날 어머니와
ⓒ 이화영
- 집안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을 텐데.
"그 당시 선생의 사회적 위치는 지식인으로 또는 세인들이 존경하는 대상이었다. 어려운 살림에 힘들게 공부시켰더니 한다는 짓이 겨우 요강공부 하러 가느냐며 어머니께서 펄쩍 뛰셨다. 중학교 역사책에 나오는 청자 매병 사진을 보여주며 나라님이 쓰던 그릇이라고 설명하자 '이놈아 올라앉으면 요강이 아니더냐'고 호통을 치셨다. 이후 3년 동안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으셨다."

- 시력을 잃은 적이 있다고 들었는데.
"늦은 시간까지 연구하다 실험실에서 자기를 밥 먹듯 하고 낮에는 사람들 만나서 귀동냥을 해야 했다. 도자기 공부를 시작하면서 생활방식이 완전히 바뀌었다. 식사는 하루 두 끼 이상을 먹어보지 못했는데 그것마저도 모두 국수여서 건강상태가 최악이었다. 지인의 도움으로 쉬면서 영양을 보충해 맑은 눈으로 세상을 다시 보게 됐다."

명채도가 높은 붉은 진사(辰砂)에 흠뻑 빠지다

▲ 철화안료로 노송의 줄기를 그리는 항산
ⓒ 이화영
- 처음 도자기를 배울 때 어떤 어려움은 없었나.
"의욕과 열정으로 시작은 했지만 보이는 것은 흙덩이뿐 도토(도자기 흙)는 어찌 만들고 유약은 무엇으로 만드는지 보고 배울만한 책도 없었고 알려주는 사람 없이 시간만 흘렀다. 허송세월하고 깨달은 것이 남보다 더 많이 연구하고 스스로 익혀 깨닫는 길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후에 백석 이정하 선생을 비롯해 지인들의 도움으로 연구의 성과가 두터워졌다."

- 진사에 애착이 많은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백자의 매력을 발견하기도 전에 명채도가 높은 붉은 진사에 흥미를 느꼈다. 온몸을 태워 버릴듯한 선혈의 붉은색이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전율을 느끼게 했다. 소박하고 보잘것없는 조각 위에 붉은 한점은 살아 숨 쉬는 생명을 내포하고 있어 볼수록 빠져들게 한다."

- 첫 전시회 때의 반응은 어땠나.
"밤낮없이 연구에 몰두해 산고의 고통을 치르고 완성한 작품을 모아 1977년 3월 개인전을 열었다. 당시 문화예술 진흥원장을 역임한 고 송지영 원장께서 '자고로 명품은 작가의 맑고 깊은 심안과 영육을 흔연히 불사르고 진지한 열정이 바탕에 깔리지 않고서는 결코 구워지지 않는다. 이 작품을 이해하는 이가 몇이나 되는지 의심스럽다'며 극찬을 해주셨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

▲ 작품을 선별하고 있는 명장 임항택
ⓒ 이화영
- 도자기를 구울 때 왜 힘든 전통방식을 고집하나.
"재래식 등요에서 질 좋은 재래종 소나무 장작을 이용해 작품을 구워내야만 고증할 수 있는 선홍색 투명 진사색을 볼 수 있다. 또 사람의 손길이 닿아야 맛이 살아나고 작가의 감정이나 혼이 깃든다. 결코 기계가마에선 흉내 내지 못하는 질감과 멋스러움 때문이다."

- 좋은 한국도자기는 어떤 것인가.
"한국적인 선과 우리 정서에 맞는 형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문양이 좌우 상·하의 조화와 균형감이 있어야 한다. 유약의 조합, 재료의 선택에서 색조가 알맞게 연출되었는지. 문양의 격조와 여백의 조화가 잘 맞아 있어야 한다. 균일하게 소성되어 있는지. 작가의 독창적 예술 세계가 녹아있어 지속적인 공감과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

- 도자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
"도자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선 무엇보다 도예인 스스로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 더불어 국가에서도 관심을 두고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육성할 수 있도록 관심을 둬야 한다. 가장 한국적이고 그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독특한 한국의 전통공예를 고급화하는데 서둘러야 한다. 세계 여러 나라의 박물관을 가보면 한국관은 초라하기 이를 데 없다. 일본은 넓은 전시공간에 공예품과 문화유산을 자랑하듯 펼쳐 놓고 있다. 정부는 한국이 마치 일본의 아류 정도로 취급되는 현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 2005년 세계 도자기 비엔날레에서 그림을 완성하고 서명을 하고 있는 항산
ⓒ 이화영
나의 연구는 멈추지 않는다

▲ 수석 전수자인 장녀 창랑에게 그림을 지도하고 있는 항산
ⓒ 이화영
- 도예를 배우고 있거나 배우려는 후학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없다. 철학도, 끈기도, 지구력도, 참을성도 없다. 장작을 패고 밤새워 불 때는 과정은 건너뛰고 빨리 공부하고 생산해서 돈을 벌 수 있는 도자기를 만들려는 욕심이 가득하다. 머릿속은 오지 돈 계산뿐이다. 하지만 희망의 끈을 놓기엔 이르다. 건강한 생각을 하는 많은 젊은이들이 있기에…. 이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개성 있는 자기만의 작품세계를 개척해 달라고 주문하고 싶다. 모방은 반짝할 수는 있지만 순간이고 자기 색을 가진 예술가만이 최고가 될 수 있다. 작가의 철학이나 긍지와 자부심이 물질 앞에서 무너져선 절대 안 된다."

- 앞으로의 계획을 말해 달라.
"진사연구는 끝난 것이 아니다. 특허를 딴 것은 연구 성과를 인정받고자 하는 목적이었고 이것을 발판으로 후학들을 위해 기본이 되고 받침이 되는 학문연구를 계속해 나갈 것이다. 이제 겨우 반을 넘어선 단계다. 살아있는 동안 명장의 이름에 걸맞게 결과를 남길 수 있도록 연구에 매진하겠다."

음성군 청소년문화의집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회는 27일까지 이어지며 백자청화계손문호를 비롯해 백자진사 산백합문호, 백자철화 죽문대호 등 진사백자와 분청사기 50여 점이 전시되고 있다.

전시장을 방문하면 명장의 안내로 도자기 제작과정과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고 특히 23일에는 이천 도자기공예 조각명장 여천 이연휴 선생을 초대해 청자매병에 구름과 학을 뜨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즐거움을 누리게 된다.

임항택 명장은 경기도 이천시 신둔면에서 항산도예연구소를 운영하며 가마의 붉은 열기보다 뜨거운 열정으로 도예에 대한 갈증을 식히고 있다.

진사백자(辰砂白瓷)란

도자기 바탕에 산화동 채료(진사안료)로 그림을 그리거나 칠한 뒤 백자유약을 입혀서 구워내면, 산화동 채료(진사)가 붉은색으로 발색되는 자기이다. 조선시대에는 이러한 사기그릇을 주점사기, 진홍사기라고도 불렀으며 진사백자라는 명칭은 20세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진사백자는 고려시대 중엽(12C)부터 사용되었으나 조선후기(18C-19C)에 와서야 흔하게 구워지고 만들어졌다. 그러나 백자나 청화백자에 비하면 아주 드문 편이다. 진사백자의 가마터로는 광주시 분원리요와 함남의 영흥일대가 알려져 있다. / 이화영

사진으로 보는 임항택 명장의 "31년 만의 귀향전"

▲ 사진 왼쪽에서 부터 백자진사청화채계손발문, 백자진사목단문발, 백자진사국화문발, 이라보상감어문발, 백자청화노송문대호, 백자진사산백창문대호, 백자진사연화문호, 분청사기인화수선문호, 백자진사목단문호, 백자진사목단문대호, 백자진사홍시문대호, 백자진사홍시문호
ⓒ 이화영

▲ 사진 왼쪽부터 아래로 백자철사산수도문대호, 백자청화포도문대호, 백자철사하문대호, 백자진사청화채매화문호, 백자청화노송문호, 백자진사청화채계손문호, 백자진사홍시문호, 백자청화매화문대호
ⓒ 이화영

▲ 사진 왼쪽부터 이라보백문호, 백자진사홍시문대호, 백자철사풍죽문대호, 이라보박지어문호
ⓒ 이화영